결정과 합리화
전공이 수학이다.
그럼에도 일 년 전, 진로를 영상 만드는 일로 정했고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했다.
주위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물었을 땐
'내가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감정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'
라며 대답하곤 했다.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.
꽤 본질적인 이유라 생각했으나
이것이 단지 합리화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.
광고 공모전에 참여하고 실패를 겪으면서
'사람들에게 보기 좋은 것'과 '내가 하고 싶은 것' 사이에서,
서로를 중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.
사람들에게 보기 좋은 것을 하자니 영상 만드는 일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
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니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. 그런데 이 인정이라는 게
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나는 이 것 없이 일을 해내갈 수 없었다.
결국 내 자신에게 중요했던 건 내가 무언가를 창작하고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'인정받는 것'이었다.
왜 나는 이 이유를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.
'인정받는 것'은 자랑스러운 이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.
그것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 포장지로 감싸 왔기에
지금에서야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.
좋아하는 이유라는 것은
1. 사실 없거나
2. 너무 많고 상호적이어서 몇 가지로 댈 수 없거나
둘 중 하나이나 둘 다 의미 있는 명제이다.
바퀴벌레를 더럽다고 싫어한다는 사람에게
깨끗이 씻어 전해준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.
바퀴벌레가 끔찍하게 생겼다고 해서
믹서기로 갈아 준다면 그 사람과 사이가 멀어질 것이다.
좋아하는 감정이 일차적으로 먼저 들고,
그 이후에 우리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인다.
무언가를 결정할 때는
이성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 역시 돌아봐야 한다.
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것은 실로 나약하기 그지없어서
감정에 지배받기 쉽기 때문이다.